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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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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

JongHoe 2020. 11. 13. 07:31

어제 내가 담당한 올해 특강이 끝났다. 마지막 공연을 한 셈이다. 허전하고 아쉽고 또 시원하고 후련했다. 거나한 뒤풀이라도 하기를 내심 바랬었나? 스탭들과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다음 일정 때문에 다들 바빠 술자리를 가지기는 어려웠다.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숙취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은 피곤했다. 졸음이 쏟아졌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해방감인지 모르겠다. 마음은 편했다.

피곤하지만 반죽을 하고, 숙성을 위해 냉장고에 넣고나자 또 반죽을 하고 싶었다. 마음이 허전하긴 한 모양이다. 뭐가 그렇게 허전한가? 강의에 참가했던 신입 기획자들과 프리랜서 아티스트들과 더 시간을 가지고 싶었나. 대단한 수업이었다고 굉장했다고 좋은 강의였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나. 젊은 사람들의 칭찬과 선망의 시선을 즐기고 싶었나. 스타처럼 유명세를 즐기고 싶었나. 명성과 존경을 받고 싶었나. 그런 온갖 종류의 칭찬이 고팠나.

식사 자리를 갖지 않고 헤어지기를 잘 했다. 안 그런 척 아닌 척 덤덤하게 무심하게 관심 없는 듯이 굴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칭찬을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 다행이다. 술을 마시고 통제의 끈이 풀려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를 스스로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반죽을 치대고 밀고 당기고 치고 뒤집고 쓸어 내리고 뭉치고 엉겨 붙은 반죽을 손가락에서 떼어 내면서 시간을 보낸다. 건방진 생각에는 노동이 약이다. 칭찬을 갈구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비관하는 마음이 들어와 있다.

내가 너무 잘난체 했나, 내가 마치 업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굴지는 않았나, 내가 아는 게 어머어마한 진실인양 대단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처럼 굴지는 않았나, 꼰대의 말을 한 것은 아닌가, 학생들을 너무 어리게 대한 것은 아닌가, 그래도 현장 실무자들인데 너무 학생 취급한 것은 아닌가, 나만 아는 사람처럼 잘난 체 한 것은 아닌가, 시간을 곱씹을수록 못난 모습만 떠오른다.

잘했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그정도면 충분했다, 질척대지 않았다, 그 정도면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했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집중했다, 집중도가 높았다, 눈을 반짝반짝 귀를 기울였다….

못난 모습을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칭찬을 갈구하고 있다. 아아 이 인간은 칭찬 머깨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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