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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e 2021. 5. 7. 10:38

어제는 우울감이 컸다. 퇴근도 싫었고 집에 가기도 싫었다. 답답했다. 아무 말 없이 누워있고 싶었다. 무릎을 베고 좀 누워 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쉬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 쉬고 싶었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냥 누워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면 좋겠고 예쁜 여자면 좋겠다 생각했다. 눈 감고 있으니 예쁘나 안 예쁘나 상관도 없을 텐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담쓰담 토닥토닥 누워있는 동안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 오는데 쉴 곳을 찾지 못한 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나기 처럼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고, 사막처럼 비를 피할 곳이 없는 곳에서 너무 지쳐 잠깐 내려앉은 새를 떠올렸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갈 곳이 없고, 어느 쪽으로 간다고 해서 쉴 곳이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멀리 불빛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를 피하지 못한 채 피로에 절어 날지도 쉬지도 못하는 새.

 

누군가를 불러내 술을 마시고 싶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불러내 수다를 떨고 싶은 것도 아니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지 않아도 괜찮다. 약간의 안정감, 신뢰의 눈빛, 배려의 숨소리가 필요하다. 가까이서 뜨게질을 해도 좋겠고 책을 읽거나 퍼즐을 풀고 있어도 좋겠다. 나에게 무슨 일 있냐 걱정이 뭐냐 누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냐 같은 질문을 하지 않고 풍경처럼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나를 풍경처럼 놔두고 자기 일에 몰두하면 좋겠다.

 

나도 그 사람을 풍경처럼 놔둔 채 멍하니 있고 싶다.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이 새끼 저 새끼 떠올리지 않고, 옳고 그르고 맞고 안 맞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풍경처럼 쉬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까지 끝내야 할지 그런 걱정 하지 않고, 걱정을 나눠주겠다고 나서지도 않으면서, 그냥 거기 있는 것 만으로 안정이 되는 사람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쏟아지는 비는 몸을 더 무겁게 하고 눈도 뜨지 못하게 했다. 몸을 피할 수 없다면 손을 들어 눈이라도 뜰 수 있게 비를 가려야 했다. 팔을 들어 이마에 대는 것도 힘들 정도로 지쳐 이대로 비를 맞아야겠다, 이러다 죽겠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끝나나 보다, 이렇게 끝나는 거였구나 하고 풀썩 쓰러져 비를 맞는 새를 떠올렸다. 아니,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질 정도로 힘이든데 아직은 버티고 있는 새를 보는 것 같았다.

 

카페 창 밖에, 나무 데크 위에서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새. 나는 비를 맞고 있지 않지만 창 밖의 새가, 비를 맞고 있는 새가 나처럼 보였다. 창 밖이었는지 TV 속 화면이었는지 다큐였는지 뉴스 속 지나가는 한 장면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를 맞고 있지 않지만 비를 맞고 있는 새가 나처럼 보였고, 무기력하고 힘들어 보이는 새가 나 같았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비를 맞고 있는 새, 지쳐서 날지도 걷지도 못하고 있는 새. 그런 새를 상상하면서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 우울감이 나아지지 않았다. 빈 사무실을 나선다. 차에 앉아 시동을 켰다가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가면 뭐하나 하고 생각한다. 시동을 끈다. 실내등이 꺼지고 나는 조용한 주차장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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