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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기까지 한 시간 본문

매일 글쓰기

마음을 열기까지 한 시간

JongHoe 2021. 9. 19. 13:52

 

나는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글 쓰는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글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글 쓰는 시간의 글쓰기가 손가락과 손목의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계속 쓰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 쓰는 시간답게 글을 쓰는 시간이 좀 더 많기를 바란다. 생각을 글로 쓰고 속에 있는 말을 꺼내는 글쓰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작가가 서재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만년필로 손글씨를 쓰는 모습도 좋겠고 노트북에 타이핑하는 모습이어도 좋다. 조금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잠깐 멈칫거리긴 하지만 계속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서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상상이지만 지켜보는 것도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꿈꾸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뭘 쓰지?'를 생각하고 있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글 쓰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고, 글 쓰는 시간을 마련했으니 이제 글을 써야겠는데, 글 쓰는 시간 마련하는 데 급급해서 막상 판을 깔고 보니 쓸 게 없다. 아파트 사는 데 돈을 다 써서 커튼 하나 달지 못한 휑한 집에 사는 기분이랄까. 글 쓰는 시간을 왜 갖고 싶었나. 글쓰기를 왜 하려고 하는가. 글쓰기는 나에게 사치인가. 글쓰기가 뭐길래 글쓰기를 짝사랑하나. 왜 글쓰기를 못 해서 안달인가. 글을 쓰고 있으면 그게 글쓰기고,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글쓰기 시간인데, 글쓰기 시간을 마련하고 '자 이제 글을 써보자' 하니 어리둥절한 건가. 쓰기 위해 시간을 마련한 게 아니고 쓰는 게 좋아 보여 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만든 시간이라 그런가.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별 관심도 없는 뉴스를 읽고, '아 이럴 때가 아니지'하고 정신 차려 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잠깐만 보려고 들어간 유튜브에서 다시 알고리즘에 이끌려 이것저것 보다 보면 잠깐만 했던 시간이 '어 하루가 다 갔네'하는 만큼 지나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고 무탈한 날이 이어지고,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지' 하면서 두둥 떠올린 게 글쓰기였던가? 아니아니, 그런 드라마틱한 등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글쓰기를 하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말자,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자, 생산적인 시간을 갖자'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랬다! 하는 기억은 아니고 그랬을 거 같다~ 하는 정도. 뭔가 결심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던 거였겠지.

 

어떤 특정 사안을 말하고 싶은 적도 없고, 누군가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니 뉴스에 해당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제품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사용법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뭘까. 설명하는 글은 글쓰기 시간보다 일과 시간에 하는 ‘일’에 가깝다. 그건 일이지 내가 글쓰기 시간에 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은 아닌 거다. 라고 쓰다 보니 아 그렇네, 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글을 쓰고 싶어 하는구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글쓰기라니, 그 생각은 못 해봤네. 내 생각을 관찰하고 나를 돌아보고 나의 기억을 되살려 그땐 그랬구나,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었겠네, 아 내가 잘못했었네, 못난 마음을 드러냈었네,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꺼내 다시 보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은 거였구나,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였나, 지금 그 기억은 어떻게 되었나, 지금은 뭘 하고 싶나, 내가 하고 싶은 건 뭔가, 그걸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 질문들을 한다. 대답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지만, 내가 나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남인 것처럼 궁금해서 묻고, 누군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열어도 괜찮은 사람이 물어온 것처럼 내가 대답한다.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하듯 내 마음을 털어놓는다.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속 좁은 사람이라거나 쪼잔한 사람이라 생각할만한 이야기도 괜찮다. 대범하지 못하고 겁 많고 비겁하고 비굴한 내 마음을 드러내도 이해하고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니 괜찮다.

 

글 쓰기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구나. 뭘 쓸까로 시작해서 뭐든 쓰면서 1시간 정도 지나니 나를 가로막는 장막이 걷히고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뭐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 자기애가 넘치는 것 아닌가? 오로지 나에게 관심을 쏟고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와 나의 반성과 바램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이니 자기애의 시간이 맞다. 마음을 열기까지 한 시간, 나를 관찰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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