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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노자의 산책

JongHoe 2021. 10. 1. 19:25

야간산책, NY 2013

한 시간 좀 넘게 걷고 왔다. 밤이 되자 드디어 내 시간이다 하는 시간이 왔고, 이때는 뭐든 하고 싶어 진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깝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또 멍한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나갔다. 걷는 시간은 좋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도 같은데, 대체로 별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어디로 갈까?' 같은 생각을 하거나, 사람을 구경하는데 여유 있게 보는 것은 아니다. 눈이라도 마주쳐 문제가 생길까 봐 안보는 척 대충 보다 말다 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제대로 보는 것도 아니다. 무슨 생각을 계속하면서 걷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공원 산책은 풍경이 좋긴 한데 너무 쳇바퀴 도는 느낌이라 불편하고, 거리는 뭔가 바쁘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 느낌이라 별로다. 일하러 나온 게 아니니 부담 없이 걷고 싶다. 굳이 선택하자면 공원보다는 시내를 어슬렁 거리는 게 더 편하다. 김영철의 동내 한 바퀴 같은 여유는 없다. 그냥 앞으로 간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곳에 여행 가서 걸을 때는 좀 달랐나? 외국에서 산책할 때는 달랐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늘 비슷했던 것 같다. 여행자의 산책이라기보다 일하는 사람처럼 걷는다. 운동도 산책도 아닌, 근처에 일하러 나온 사람처럼 걷는다. 그러고 보니 내 걸음은 근로자의 걸음이었구나, 갑자기 내 걸음 스타일을 생각한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남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눈에 띄고 눈에 띄면 불편하다. 유별나 보이는 것은 내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입고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하게 사는 게 편하다. 하지만 무리 속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은 또 싫다. 나의 노력이 무의미하게 가치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얼마나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랑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것이다. 그러면서 눈에 띄는 것은 싫어하는 모순된 취향이라니. 아무튼 나는 남들 눈에 띄는 것은 싫어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무리의 1/n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외모나 존재 자체로 부각되는 것 보다 결과로 돋보이는 것이 훨씬 멋있다고 느낀 것일까, 하긴 지금도 그런 타입인 것 같기는 하다.

 

평소와 다른, 좀 차려입었다 싶은 옷을 입고 현관문 이상을 나서지 못한다. 집 밖을 나섰더라고 곧 집으로 돌아온다. 이대로 나갈 수 없다고, 하루 종일 옷 때문에 땀을 흘리고 축축해진 몰골로 다니게 되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럽다. 만만한 차림은 역시 작업복.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는다. 머리에 바른 왁스도 불편하다. 손에 물을 적셔 머리를 흩트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처럼, 변화를 알아차리기 힘든 모양을 하자 마음이 편하다.

 

프랑스에 공연 갔다가 쉬는 날 혼자 에펠탑 아래까지 갔다가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에펠탑 구경을 끝냈다. 충분하다,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겠다, 여기까지 온 걸로도 충분하다, 파리 한 두 번 올 것도 아닌데, 다음에 또 오지 뭐, 줄 서서 봐야 할 가치가 있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뒤로 20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프랑스에 가지 못했다. 한두 번 올 것도 아닌 데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못 갔다. 대신 파리 시내를 8시간 가까이 걸어 다녔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여기저기 다녔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기다리는 것 혹은 줄 서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광객처럼 파리에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었던 거다. 나는 파리에 처음 온 것이고 지도를 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찾아다니는 관광객이었지만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동네 사람처럼 보이는 게 좋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동네 사람이 아닌 걸 알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동네 사람처럼 보이길 기대한다. 외지인들에게는 동네 사람으로, 진짜 동네 사람들에겐 최근에 이사 온 사람으로, 여기에 정착할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 정착할 마음은 1도 없으면서 눌러앉을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고 있다. 이 동네 저 동네 전국 어디에나 다 우리 동네이고 싶은 마음은 아닐 텐데. 여행자 같은 느낌보다, 초보자의 느낌보다 좀 더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여행자보다는 이방인,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근처를 얼쩡대는 이방인이다. 동네 사람들이 가진 전문성과는 다르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사람들과 다른 어떤 신비로운 뭔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돈 쓰러 찾아온 관광객이 아니라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라는 상태를 좋아하고 있다.

 

파워 워킹도 아니고 여유로운 산책도 아닌 도보 여행을 한다. 매일 지나는 길을 마치 외국의 이름 모를 동네 산책을 하듯 새로운 시선으로 걷는다. 하지만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다, 장기체류 외국인 노동자처럼, 여기 사는 사람이지만 여기 사람 같지 않는 시선이다. 아, 그런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거리감이 내가 안심하는 정도인가. 그래서 내가 바쁜 걸음이었구나. 나쁜 사장님 심부름 가는 중인가? 어쩐지 풍경이 즐겁지 않더라니, 외노자의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구나. 음...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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