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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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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JongHoe 2021. 10. 26. 23:51

만년필로 글씨를 쓴다. 한동안 노트에 쓴 손글씨가 답답해 쓰지 않았는데 최근에 한 유투버가 자기만의 글씨를 쓴다, 자신만의 개성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만년필을 써 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만년필이 있었지 하고 다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고.

 

:: 이연 / 느낌이 있는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 만년필을 쓰세요 https://youtu.be/dylQETTXV1w

 

모처럼 초등학교 강당에 공연 나갔다. 무용단 사물 단원들의 타악기 연주와 판소리, 농악, 사자춤이 있는 찾아가는 공연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공연을 보았다. 집중하는 아이, 산만한 아이, 관심 없는 아이, 다양하다. 한 반 학생 수가 무척 적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공연 하루 전, 셋업을 위해 찾은 강당에는 배드민턴 수업이 있었다. 방과 후 수업 뭐 그런 건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무대 셋업을 진행한다. 키가 큰 고학년 아이도 있고 작고 어려 보이는 아이도 있다. 학원 갈 시간이라 선생님께 말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그래 그래 어서 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학원 갈 시간이 된 학생들은 말하라고 했다.

 

테니스 수업처럼 선생님이 치기 편한 공을 넘겨주고 아이들이 순서대로 공을 받아넘긴다. 어린아이 두 명이 공을 잘 치지 못했는지 선생님이 몇 번 더 기회를 주지만 받지 못한다. 내가 지켜보는 게 부담될까 봐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나중에 수업 끝나고 마무리하면 되니까.

 

선생님은 아이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아이에게는 배드민턴 채로 셔틀콕을 치는 게 어려운가 보다. 그중 한 아이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살짝 비만이 있다고 할까 그냥 조금 더 건강하달까, 긴 머리를 묶어 올리고 분홍색 옷을 입고 귀걸이로 멋을 낸 아이다. 어릴 적 내 모습과 닮았다로 할만한 부분은 없지만 그냥 내 아이처럼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무리에서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다는 게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무용 콩쿠르에서도 국악 콩쿠르에서도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모여 경쟁을 하는 곳에서 늘 그런 아이가 보였다.

 

'저 아이는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의 관심은 다른 아이에게 가있고 부모님도 오지 않아서 혼자 이겨내야 하는 아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지만 자기 때문에 일이 그르치는 건 싫어서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잘되지 않는다고 손들고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말없이 혼자 참고 있다.

 

저 아이는 도움이 필요하다, 선생님 저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거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다, 아 내가 말을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면 더 곤란해지려나? 어쩌면 저 아이는 선생님의 보충 지도를 받는 이 순간이 어서 지나 편한 상태로 더 연습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내가 괜히 나서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선 안되지, 그런 생각이 두서없이 쏟아진다. 아이에게 진짜 도움이 필요한 건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선생님이 넓게 보면서 잘 보살필 것이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연 준비를 계속한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아이들을 불편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이 아린다. 생각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날뛴다. 나에게 아이가 있으면 출근도 못하겠다, 아이 걱정에 살 수나 있겠나, 아이고 혼자라 다행이다, 그런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 생각, 특별히 그 아이여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생각에 빠지는 상황에 대해 글을 썼다. 만년필로 노트에 썼다. 그날 있었던 일을 노트에 쓰는데 또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아려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 오고 숨이 찼다.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미안했다. 그러다가 내가 뭐라고 도움을 주지? 내가 그렇게 대단해? 뭐 키다리 아저씨야? 지 앞가림도 못하면서.

 

노트에 글씨가 점점 빨라지고 글씨를 쓰는 느린 손을 답답해하다가 알았다.

 

그 아이가 나였구나. 내가 나를 보고 있었구나, 그 아이에게서 나를 보았구나, 전에 보았던 아이들도 나였구나.

 

뭘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나를 보았다.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보았다. 잘하지 못해서 풀 죽어 있는 내가 거기 있었다. 가난해서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하는 내가 보였고, 잘 보이고 싶지만 관심받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무기력함을 두려워한다"라고 글쓰기가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아, 나는 무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구나'하고 남의 얘기 듣는 것처럼 알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이 나에겐 공포로 작용하는 것이 무력감이었다. 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해내지 못하는 것, 못하는 것을 보이는 것, 나의 무능함이 드러나는 것, 그런 상황이 나에겐 엄청난 공포로 작용했다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자리를 떠나고 싶다. 땀이 난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나를 쳐다보는 게 부담된다. 내 말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밉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시야가 좁아진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의 수가 다 읽히는 것 같다. 나의 행동을 비웃는 것 같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누군가 대안을 제시하면 옳든 그르든 따르고 싶다. 지금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나를 망치는 결정이라 하더라도 따르고 싶다. 내 몸이 상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넘길 수 있다면 그 선택을 결정할 정도로 절박하다. 생각은 점점 나를 조이고 들어와 처음 문제가 뭐였는지도 잊어버리고 몸은 경직된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숨이 차 온다. 누군가 나를 여기서 어서 구해줬으면.

 

어쩌면 그런 생각이 작용한 것일 거다. 누군가 나를 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이에게 적용됐을 거다. 무력감에 관한 것, 자격에 관한 것, 그런 것들이 내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글을 쓰면서 보게 됐다. 무력감은 유산처럼 전달된다. 부모님의 무력감을 보고 느끼는 두려움도 있다. 자식 앞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이 내게 공감으로 전달되어 왔다. 그래서 모른 척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처럼 굴었다. 뭘 알고 그런 게 아니라 본능적은 회피였을 거다. 그리고 부모님의 무력감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내 욕심들이 부끄러웠다. 그분들이 가졌을 무력감에 또 가슴이 아파왔고, 아이와 부모님이 느꼈을 무력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공감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3대에 걸친 무력감이 왜 이렇게 한꺼번에 나타났나. 무섭고 아프고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무력감에 대한 공포를 마주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두려움을 이해하게 되었달까. 비슷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타이핑하는 글쓰기와 달리 내 마음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노트 글쓰기가 좋아졌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닌 글쓰기가 어떤 자유를 주는지 손글씨를 쓰면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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