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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계란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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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계란밥

JongHoe 2021. 11. 5. 13:14

오늘 아침은 양배추 계란밥을 해 먹었다. 소화가 잘되는 재료들이라 속이 더부룩하지도 않고 만들기도 쉽다.

 

양배추를 씻어서 길쭉하게 채 썰고, 그릇에 담아 랩 씌워 구멍을 좀 내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쪄낸다. 아삭한 느낌이 사라질 정도, 말랑말랑해진 양배추를 꺼내 물기를 짜내고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며칠 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

 

밥에 양배추 찐 것을 풍성하게 올린다. 그 위에 계란을 깨서 올린다. 전자레인지에서 2분, 계란을 반숙 정도로 익힌다. 꺼내서 참기름 두르고 소금 살짝, 파슬리도 눈에 보이니 흩뿌려 넣고 슥슥 비벼 먹는다. 만들기도 먹기도 치우기도 편하다. 천천히 씹어서 여유 있게 먹자고 생각하지만 금방 다 먹는다.

 

회사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구했다. 여기선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사 먹는 음식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아 만들어 먹는다. 그래도 집에 있다 보면, 어쩌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고, 밤에 출출할 수도 있고 하니, 그래 라면이라도 끓이려면 냄비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하면서 챙긴, 간단한 도구들로 음식을 만든다.

 

나는 식사에 공을 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안 먹고 싶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니  맛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급하게 싱크대에 서서 대충 먹고 싶지는 않다. 그릇에 담고, 반찬도 접시에 덜어서 꺼내 놓고, 작은 쟁반이라도 놓아서 테이블에 올려 먹는 게 좋다. 먹는 것에 공을 들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테이블 세팅 정도는 해야 하는 이상한 습관이지만 그렇게 먹는다.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는 게 너무 싫다. 일하다가 흐름이 깨지는 게 제일 큰 이유다. 그래서 밥 먹는 걸 미루다 보면 갑자기 당이 떨어지고, 급 피곤해지고 힘이 빠진다. 그러면 급하게 단것을 찾게 되고, 배고프다고 많이 먹고, 배고팠던 것을 보상하듯 많이 먹고, 배불러서 후회하고, 더부룩해서 지치고, 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맥이 빠져버린다. 그런 악순환을 피하려면 그저 때마다 잘 챙겨 먹는 게 낫다. 그러니까 더 귀찮지 않으려고 덜 귀찮게 먹는 거다.

 

끼니 챙기기가 귀찮으면 밖에 나가 사 먹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그게 더 귀찮다. 대단한 맛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나가는 게 귀찮다. 나가면 들어오기 싫어지기도 하고, 나갔다 돌아오면 일의 흐름이 더 깨지기도 하고. 음식을 만드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먹는 행위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지고, 먹기 위해 뭔가를 중단하는 것이 싫은 거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중단하는 게 싫은가 싶기도 한데,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니, 먹을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불편한 거다. 중요한 일이건 아니건 간에 그냥 안 먹고살 수 있으면 그러면 좋겠다.

 

음식을 먹는 일에 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나 생각해 본다. 살이 쪄서 그런가? 아니, 그 보다는, 어쩌면 연명한다는 생각,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것 같다. 그릇 하나밖에 없는 간단한 설거지를 하다가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작은 쪽방에서 냄비 하나 부루스타 하나로 겨우 끼니를 챙기는, 그 마저도 넉넉하지 않고, 건강상의 문제로 잘 먹지도 못하는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지금 이 오피스텔의 작은 싱크대와 쪽방의 수챗구멍이 연결된 것이다. 쪽방의 내가 오피스텔의 나를 상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비굴을 감수하게 될 것이라고, 안 해도 될 생각과 걱정을 사서 한다. 아마도 지금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겠지. 무시당하고도 힘이 없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두렵다. 빌어먹고 살지 않으면 좋겠다. 비굴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품위 있는 늙은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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