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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관찰
퇴사 1년이 되어 간다. 벌써. 작년 이맘때쯤이면 퇴사를 결정하고 정산하고 있을 정도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유튜브로 영화 를 잠깐 보게 되었는데, 갑자기 울컥 가슴이 먹먹해지는 포인트가 있었다. 기억이 났다. 이런저런 이유들,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릴만한 것들이 필요했다. 더 좋은 데 간다고, 먹고살 것 마련해 두었다고, 그런 말들이 필요했다. 나오면서 까지 사람들 눈치를 보다니. 그것도 좀 불쌍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지만, 나름 더 이야기가 길어지는 걸 막으려고 했던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뭘 잘해 보겠다고, 뭘 어찌해 보겠다고 퇴사한 게 아니었다. 살겠다고 나왔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영화를 보면서 회사를 그만두라고, 그렇게 다니지 말라는 그런 말이 나왔다. 나오면 나아진다고. 그..
따뜻한 물에 손을 씻으면 기분이 좋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손을 뽀송한 수건으로 닦으면 생활의 의욕이 생긴다. 설거지를 끝내고 정돈된 싱크대는 의욕이 솟아나는 장소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부담스럽지 않게, 늘 그렇게, 무심하게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다. 바쁜 일정을 보내다 보면 일상이 사라진다. 쫓기듯 허겁지겁 살고 있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느낌. 내가 내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판단에 끌려다니는 날이 계속되다 보면 일상이 없어진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내 속도대로 걷다 보면 서서히 일상이 회복된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맞추지 않고 내 호흡에 맞춰 내 방식으로 타이밍을 잡는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내 몫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그렇게 사..
출장지에서 느긋한 술 한잔. 늦은 밤, 동네 술집에 간다. 맛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늘 지나다닐 것 같은 길에 있는 평범한 술집에 간다. 고만고만하고,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곳. 어제 마신 것과 같이, 내일도 마실 것 같은 술집에 간다. 특별해서 자꾸 가는 게 아니라, 자주 가다 보니 특별해지는 술집. 꼭 이 집이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냥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는 술집인데 가다 보니 늘 그 집이다. 매일 혹은 매일에 가까운 방문을 축적하는 집, 처음 가지만 처음 같지 않은 집. 어느 동네에 가더라고 있을법한 동네 호프집, 치킨집이다. 여기가 일본이었다 하더라고 어울릴 것 같고, 여기가 중국이라고 하더라고 어울릴 것 같고, 여기가 충북이라 하더라도, 경남이라고, 전남이라고, 강원도라고..
오늘은 재택근무 하느라 집에 있었다. 미뤄두었던 짐정리 하려고 이것저것 꺼내다 보니 만들다 만 닉시클럭이 보인다. 닉시 진공관으로 된 숫자 표시기가 있는 시계인데, 아는 분이 조립 키트를 몇 개 구입했는데 잘 안된다고 나보고 만들어 보라고 해서 만든 것이다. 숫자를 3개 까지 납땜해서 넣고 동작 확인하고 그분 것 만들어 드리고 내것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동작이 되는 것 확인하고 나니 귀찮기도 해서 서랍에 넣어 두었던 것인데 지금까지 온 것이다. 사실 깜빡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짐정리 하려고 보니 만들다 만 것들이 많다. 글쓰기도 그렇고 사진 찍고 글쓰기도 그렇고 이것저것 하다 만 것들이 보인다. 체력이 딸린다. 예전에는 생각과 실천이 찰싹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생각과 실천이 참 멀다. 종목..
The Load Out & Stay - Jockson Browne https://youtu.be/scsJZ67ssDY 최근들어 다시 자주 듣고 있는 곡이에요. 어렸을 때 밴드를 동경할 때 듣는 느낌과 요즘 듣는 느낌이 달라져서 그런가 더 애정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가사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면 '어 이런 느낌이 아닌데...' 하게 되더라구요. 영어를 잘 아시는 분들이 영어는 잘 하시지만, 공연 스탭들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그런거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해석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 답답한 마음입니다. 해석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소개하자면... 기분 좋게 공연 끝났고, 오늘 공연이 좋았고, 이제 관객들과 친해져서 더 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좀 더 있고 싶은 거죠. 피곤하..
어릴때는 옥상에서 골목을 내려다 보는 게 좋았다. 당연히 위험하다고 혼나긴 했지만. 놀이터에선 뛰어 놀기 보다 정글짐 위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바라보는 게 좋았다. 첨벙첨벙 물놀이 하는 데서는 물에 들어가기 보다 평상에 엎드려 책을 읽으며 딩굴거라는 게 좋았다. 요즘은 드론으로 보는 풍경, 비행 시뮬레이터로 보는 부감 풍경도 좋다. 몰래 카메라를 좋아하는 관음증인가? 남들을 내려다 보기 좋아하는 권력지향형 취향인가?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떨어지지도 못하는 소심한 관종인가? 남들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수 있는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자리,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대채로 그랬던 거 같다.
나는 관찰자. 깊이 들어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나오지도 않는다. 무대도 아니고 객석도 아닌 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반은 잠에 빠져 꿈을 꾸지만 또 반은 깨어나 상태를 관찰한다. 늘 긴장하며 주위를 살피는 초식동물 캐릭터인가.
퇴근 후에 빵 만들면서 음악 듣고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해요. 빵 반죽하고 굽고 식히는 동안 생기는,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좋아요. 토요일이지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지만 내일은 또 일찍 출근하지요. 힘들지 않아요, 재미있어요. 설거지까지 끝난 깨끗한 식탁을 보면서 드는 흐뭇한 느낌. 빵 먹는 것보다 '다 만들었다', '다 치웠다' 느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군데군데 덜 치운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건 또 뭐 내일 하죠. 지금은 이 느낌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는 집 안에 있습니다.
긴 출장에서 복귀하자마자 일요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금방 적응할 수 있게 휴일근무가 배정되었습니다. 오늘은 일이 많지 않아 편안하게 여유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좋습니다.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시간은 짧아요. 반죽하고 숙성하는 시간에 비하면 1/10도 안 되지요. 손에 밀가루 덕지덕지 붙여 조물딱 거리는 반죽 시간도 좋고 숙성을 기다리는 시간도 명상의 시간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오븐에서 빵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 가장 좋습니다. 이 순간을 기쁘게 보기 위해 지난 몇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재료를 섞고 반죽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입니다. 레시피대로 하면 제대로 나오는 것을 알지만 이번에는 이걸 바꿔보고 또 다음에는 저것을 바꾸면 어떨까 상상하며 시도해 보고 생각대로 나오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생각대로 나오면 생각대로 나와서 좋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어 무엇이 잘못되었지 무엇을 바꿔야 할까 생각하며 다음을 계획하는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