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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른의 여행

JongHoe 2022. 6. 14. 01:44

중랑역 근처, 집으로 그냥 갈 수 없게 만드는 동네 술집들

 

출장지에서 느긋한 술 한잔.

 

늦은 밤, 동네 술집에 간다.

맛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늘 지나다닐 것 같은 길에 있는 평범한 술집에 간다.

고만고만하고,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곳.

어제 마신 것과 같이, 내일도 마실 것 같은 술집에 간다.

 

특별해서 자꾸 가는 게 아니라, 자주 가다 보니 특별해지는 술집.

꼭 이 집이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냥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는 술집인데 가다 보니 늘 그 집이다.

매일 혹은 매일에 가까운 방문을 축적하는 집, 처음 가지만 처음 같지 않은 집.

 

어느 동네에 가더라고 있을법한 동네 호프집, 치킨집이다.

여기가 일본이었다 하더라고 어울릴 것 같고,

여기가 중국이라고 하더라고 어울릴 것 같고,

여기가 충북이라 하더라도, 경남이라고, 전남이라고, 강원도라고 하더라고

아무런 위화감이 없이 거기 있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술집이다.

 

가게에 들어가면서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그리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안주로... 뭐가 좋을까요?

사장님의 추천은 버터구이 오징어. 그래요, 그거 주세요.

 

맥주는 니가 들고 가세요, 밖이 시원하고 좋아, 네 아유 그럼요.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옛날 치킨집인데, 버터구이 오징어가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추천 메뉴다.

하긴, 밤늦게 찾아온 혼자인 손님이 얼마나 먹겠어.

 

으른의 여행은 이런 거지.

혼자서 들어가는 술집이 어색하지 않고, 조금 지저분하고 맛집이 아니어도 괜찮고,

현지인처럼 인사도 통성명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모텔 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안주가 남아서 또 한 잔 마시고, 그래도 아직 안주가 남아서 또 한 잔을 주문한다.

지나가는 차에서 바람이 일고 살짝 흙먼지도 나지만 선선한 밤 기운을 실내에서 보낼 순 없지.

 

근처 포장마차에서 나온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유 화장실 찾느라 그래...라고 말하면서 화장실을 안내하지는 않는 사장님.

그래 그럴 수 있지.

 

최근에 당한 사장님의 사기 피해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청한 건 아니었지만, 말씀을 시작하시니 나는 듣는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저런, 아이구, 그러셨구나...

나는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귀에 걸려 있던 에이팟을 슬쩍 빼서 케이스에 넣는다.

그래, 솔직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다.

에어팟으로 음악 듣다가 놓친 부분이 있어서 그건 거지.

내가 음악 듣고 있는 줄 모르고 말씀을 시작해버린 사장님 탓도 있고.

 

손님이 없어서, 오늘은 내가 마지막 손님인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일어서야지.

여기 계산해 주세요.

벌써 가시게?

 

그래 나는 여행을 온 거야.

여긴 외국이고,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손짓 발짓 더듬더듬 겨우 알아듣고 소통하는 외국인이지.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재미에 빠진, 적응하고 있는 여행객이야.

 

남은 맥주를 마시고,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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