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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굴종의 꿈을 꾸었다

JongHoe 2020. 10. 4. 08:27

무서운 꿈을 꾸었다. 현실과 상관없는 이상한 공상으로 잔인하고 지저분하고 야한 영화 같았다. 야한 영화라고는 해도 뭔가 섹시한 것도 아니다.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것들이어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꿈에서라도 배울 것이 있나?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이 있지? 지금 내 생활에서 어떤 것이 꿈과 이어졌을까?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꿈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 지금 현실이 죽음을 생각할 만큼 비참하지도 않은데 그런 생각을 했다. 하여튼 꿈에서는 시궁창 같은 환경에 처박히게 되었고 폭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기력했고 저항의지가 꺾였다. 인간성을 잃었다. 동물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학대에 저항하지 못했다. 내 의지가 완전히 꺾이고 순종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처지에 끌어들이는 역할에 동원되었다. 도망가라고 여기 따라오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폭력이 무서웠다. 겨우 눈빛으로 따라오지 말라는 표시를 했지만 사람들은 표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처럼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당장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소원을 이룰 것 같은, 매력적인 금전이 눈 앞에 제시되기 때문이다. 지하에 따라가지 마, 저들이 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지 마, 아아 이런 길에 들어오지 마. 하지만 소용이 없다.

 

대단한 욕심도 아니고 평소 꿈꾸어오던 것을 실현할 작은 시작, 대단하지도 않을 그 시작을 도와주는 정도의 금전이다. 그런 정도의 금전에 실현을 도와줄 스태프들이 붙어서 대단치도 않게 일을 돕는다. 그런 맛을 보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지하에는 훈련소가 있다. 사람들의 자립의지를 꺾고, 이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폭력의 장소다. 탈출할 수 있는 경로를 상상할 수 없도록 지하로 들어간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곳이다.

 

나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폭력 앞에 금방 순응했다. 강하게 한번 훅 다가오는 무서운 지시를 따르고 나면 약하게 이어지는 어렵지 않은 지시들을 따르게 된다. 어려운 것도 했는데 쉬운 것쯤이야. 그런데 그 쉬운 것도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할 못된 짓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내가 점점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점점 일을 즐기게 되고, 폭력 앞에 무릎 꿇는 자들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 내가 바로 저기에 있다가 왔는데, 내가 바로 저렇게 무서워했는데, 내가 저렇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지금은 그들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앞잡이 하던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꿈에서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생각했는데 일제시대에 살았어도 그랬을까. 말 잘들으니 살기 편한데, 순사가 시키는 대로 살면 남들보다 살기 편한데,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기기 위해 사람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더라도 아 나는 미처 그것까지는 몰랐네, 그냥 나쁜 사람들이 숨어 있다기에 알려 주었지 라고 말했을까. 그렇게 살면 사는 게 사는 걸까. 폭력이 무서운 나는 일제시대에도 폭력의 힘 앞에 조아리고 있었겠지.

 

6시에 잠에서 깨고, 알람을 들으며 다시 또 깨고, 이제 글 써야지 마음 먹으면서 꾼 꿈이다. 글쓰기의 소재를 안겨준 꿈인가. 아, 아니다 꿈을 꾸다가 알람을 듣고 깨어나 이제 글 써야지 생각했었나? 꿈에서 깨어나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여튼 어느 쪽이든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40여 분을 계속 꿈을 꾸었다. 꿈을 이어 나갔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보다는 덜 잔혹해지고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느새 나는 그들과 함께 사람들을 굴종시키는 스탭이 되어 있었다.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폭력의 장으로 이끄는, 현실의 사람을 이 세상으로 유혹하는 부서의 일이다. 공연을 만들고, 콘서트를 운영한다. 아, 꿈에서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 자주 보던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데 저들은 언제부터 여기에서 일을 하고 있었나.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꿈을 계속 꾸게된다. 불쾌한 꿈에서 벗어나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서늘해진 날씨에 따뜻한 이불이 계속 붙잡아도, 계속 자야 한다고 게으른 신체가 말을 걸어도, 깨어나 앉지 않으면 이상하고도 오묘한 꿈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 현실의 시계가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안다. 꿈속 세계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의 카드값을 대신 내주지 않는다. 카드 값을 내려면 깨어나 일어나서 세수부터 해야 한다. 오늘의 이상한 꿈이 왜 내게 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30분을 보냈다. 왜 왔을까. 연휴 끝나면 있을 보직 이동에 대한 불안감인가. 폭력 상황이든 폭력적인 상황이든 어떤 무서운 힘 앞에 굴종하지 말라는 뜻인가, 그렇게 살아보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라는 얘긴가? 아 그건 좀 어려운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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