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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JongHoe 2023. 2. 4. 20:36

동네 골목에 있는 스시집에 갔다.

골목 시장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고, 전철역에서 주택가로 가는 이면도로에 있는 작은 가게.

오며 가며 언제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집이다.

 

저녁 시간이기도 했고, 나는 술을 한잔하고 싶었다.

모둠 초밥 같은, 보통 10 피스 정도 나오는 초밥에 생맥주나 사케 한 도쿠리 정도면 적당하겠다.

 

시간은 8시, 식사 손님들은 다 빠져나갔는지 가게는 비어있었다.

가게 문 닫으려고 정리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 있으니 주방에서 사장님이 나타났다.

 

먹을 수 있나요?

그럼요, 편한 데 앉으세요.

 

테이블은 3개, 그중 1개는 1인 테이블을 2개 붙여 놓아서 손님이 많을 때는 4개로 바뀔 수 있다.

주방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핀다.

'1인 혼술 사시미 세트'와 '1인 혼술 참치 세트'가 눈에 띈다.

술안주로는 초밥 보다 회가 좋겠다.

 

1인 혼술 사시미 세트와 참이슬 한병 주세요.

 

회가 준비되는 동안 기본 안주에 술을 마신다.

야채에 식초를 살짝 친 샐러드가 먹기 좋았다.

한 잔, 캬 좋다. 입 안이 개운해진다.

 

양파와 당근을 채 썰고 초장에 버무린 샐러드에 참치회를 2점 올려놓은 것도 메인 안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참치 회 한 점에 또 한 잔, 안주를 리셋하는 용도로 소주를 마신다.

그러니까 이건 안주 맛있게 먹으려고 술을 마시는 셈이다.

 

장국 대신 나온 작은 우동이 또 술을 부른다.

또 한잔, 본 편이 나오기도 전에 술이 술술 들어간다.

 

두툼하고 길게 썰어 나온 회는 먹음직했다.

광어와 연어 5개씩, 초밥 4개가 혼술 세트 메뉴다.

 

등산 갔다 오시나 봐요.

 

나름 차려입은 건데 등산복으로 보이나 보다.

 

아, 아뇨,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일요일엔 등산 갔다 오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 시간엔 등산 갔다 오는 분들이 잘 오거든요.

아아 그러시구나.

 

어딜 봐서 등산복인가.

 

회 한 점, 소주 한 잔.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안주가 맛있으니 술이 잘 들어가네요.

 

동네 분이 아니신 거 같은데, 여긴 처음이시죠?

술을 가져다주면서 사장님이 묻는다.

 

네, 최근에 이사왔는데... 몇 달 안 됐어요.

지나가다 한 번 와봐야지 했는데, 전에... 사람이 많아서 왔다가 그냥 가기도 했어요.

 

하하 여기가 좀 동네 술집이라...

음식을 음미하는 사람보다는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막걸리 마시고... 술 마시면 큰 소리로 떠들고, 오래 있어요.

그래서 초밥집 느낌보다는 포장마차 느낌이 더 나기는 해요.

 

사장님은 초밥 전문점의 장인으로 지내고 싶은데 동네 술꾼들은 그걸 내버려 두지 못하나 보다.

 

아니에요, 저는 이 집이 초밥에 대해 뭔가 전문적인 느낌이 나는 것 같아서,

그런 포스에 끌려 오게 됐어요. 밖에서 볼 때 고수가 운영하는 숨은 맛집 느낌이에요.

 

진심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게 말이 나왔다.

아, 술을 마셔서... 술기운에 그랬나?

 

사장님이 주방에서 부스럭거리더니 광어 지느러미라고 했던가...

하여튼 흔한 부위는 아니라면서 서비스로 맛있는 것을 주셨다.

 

와 이거 맛있네요.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소주가 거의 떨어져 간다.

술을 더 시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마셨다.

 

사장님이 맛있는 사케 한잔 드셔볼래요? 하면서 술을 권한다.

 

차게 드시나 따뜻하게 드시나?

아 저는 그냥 상온으로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럼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화려한 모양의 사케였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사케를 도쿠리를 따라 주신다.

 

새 술이 왔네.

또 한잔, 또 안주도 한 점, 또 한잔.

술이 술을 부른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맛있었어요.

 

안 취해써요, 네 괜찮아요, 네네, 그럼요 그럼요, 걸어갈 거예요, 네네 괘엔차나요, 갈 쑤 이써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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