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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e 2023. 2. 7. 17:05

주위를 잘 살피는 편이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보게 된다.

셜록 홈스처럼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결론을 유추하진 못하지만 그런 과정은 좋아한다.

 

운전 중에도 다른 차선의 차들을 살핀다.

다른 차선에서 펼쳐지는 차선 변경, 특히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 브레이크 등, 과속, 경쟁관계 차들의 간격...

그런 것들 때문에 생기는 오기, 고집, 화남, 복수, 욕심 그런 감정을 읽는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예측하고 규칙성을 찾는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고 검증하진 못하지만 그렇겠구나 정도 생각한다.

재미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피곤하다고 안 하는 경우는 없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하게 되는 어쩌면 생존본능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초식동물의 긴장감 같은.

 

초식동물은 눈이 옆에 달렸다.

넓게 보기 위해서다.

얼룩말은 풀을 뜯으면서도 주의를 살핀다.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늘 관찰한다.

평소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살 수 있다.

 

육식동물의 눈은 목표물에 집중할 수 있게 정면에 배치된다.

사자와 같은 동물은 내가 싸우고자 할 때가 아니면 싸울 일이 없다.

그래서 늘어지는 낮잠을 잘 수 있다.

뒤통수 맞을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공연을 하는 동안 내 자리는 조종실이다.

공연이 일어나는 모든 곳을 볼 수 있다.

공연을 보고 있지만 관객과는 다른 곳.

 

조종실이라고 하면 포클레인 기사나 타워 크레인 기사가 있는, 태권V를 조종하는 조종실이 생각난다.

내가 있는 조종실은 관제탑 같은 조종실이다.

태권V로 치면 김박사인지 윤박사인지 하여튼 그 박사님이 있던 조종실 같은 곳.

현장에선 떨어져 있지만 온갖 정보가 모여있고,

태권V가 위험에 처해있더라고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 뭔가 할 수는 없는 그곳.

만화에선 위험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그런 말 하는 곳이지만

공연장에선 사고가 나지 않도록 무전기와 인터컴으로 이래러 저래라 간섭하고 지시하는 곳이다.

우아한 백조의 부지런한 발 같은.

 

공연을 하지만 출연자는 아니고,

공연을 보지만 관객이 아니고,

공연을 만들지만 창작자라 불리지 않는 구역이다.

 

나는 관찰한다.

 

관객의 움직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나거나 갑자기 들어온 문자를 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본다.

하우스 어셔가 두리번거리고 있는지 관객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살핀다.

때에 맞춰 조명이 켜지고 있는지, 영상은 잘 켜졌는지,

기계가 잘 움직이고 있는지, 움직일 때 이상한 소리는 나지 않았는지 귀를 기울인다.

마이크가 잘 붙어있는지, 마이크에 땀이 들어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닌지 살핀다.

연주자들이 마이크를 밀어 버렸는지, 악기에 밀려 틀어진 것은 아닌지,

핸드폰 충전기 불빛이 너무 밝은 건 아닌지, 앰프 위에 올려놓은 생수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살펴봐야 할 곳이 많다.

하지만 불편하진 않다. 그렇게라도 볼 게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다.

습관적으로 본다.

 

걱정으로 따지자면 나는 초식동물형 인간이 분명하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경계한다.

언제 휴식의 기회가 올지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 금방 잠들고 작은 인기척에도 쉽게 깬다.

적진에 침투했다가 빠져나오는 스파이처럼 예민하게, 짧고 깊게 잔다.

생존에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관찰하는 사람이다.

선택이 아니라 본능으로 하는 걱정이자 관찰일 것이다.

 

...

쓰다 보니 좀 비장한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까지는 좀 아니지 않나...

 

그나저나 스파이라고 하기엔 코를 좀... 조심성 없이 많이 골지 않나?

예민하다고 하기엔 너무 좀... 편안한 몸 아닌가?

뒤로 기대 편안한 배에 손을 올리고 생각한다.

손이 올려놓을 수 있는 배가 있다는 거 자체가... 좀.

그래 이건 캐릭터지, 내 이야기가 아니라,

관찰자 캐릭터라고.

그냥 그렇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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