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관찰
셰어 하우스 본문
집을 같이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월세를 아끼기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았다.
하긴 어렸을 때는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았으니 평생을 나 이외의 사람과 한 방을 쓰면서 살아온 셈이다.
아마도... 혼자 월세를 낼 수 있는 30대가 되기 전까진 그랬다.
나름 일찍 상경한 편에 속해서 내가 사는 집에 후배들이 밑도 끝도 없이 찾아와서 며칠씩 있다 갔다.
서울 상경의 베이스캠프 같은. 서울의 맛보기 집이랄까.
나름 기댈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후배들에게 나는 집을 구하는 한 달, 진짜 길게 봐서 한 달이다, 그전에 방을 구해라고 말했다.
싱글 침대 하나 놓을 공간도 없는 단칸방에 책도 많고 악기도 있는 작은 방에 사내 둘이서 지내는 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작은 방에 함께 지내면 사이가 나빠진다.
다들 서울 생활 쉽지 않네, 그렇게 느끼고 돌아갔을 거다.
좋아 보였는데,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서울 빡시네... 뭐 그런 거 느꼈겠지.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선 방 3개가 필요하다는 게 나의 지론 같은 거다.
무슨 대단한 근거를 댈 수 있는 이론이 있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소주도 1차에서 인원수 +1병 정도가 적당하더라.
동성도 그렇고 이성도 그렇고, 사이가 좋은 사람도 한 방에서 지내는 건 일주일 넘기기가 어렵다.
내향적인 데다,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성향 때문에 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 내 공간에 있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그 부담이 싫음에서 미움으로 바뀌기 전에, 미움이 증오로, 증오가 살의로 이어지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좋다.
살의는 좀 심했나. 하여튼 뭐. 그런 느낌.
사람이 싫으면 뭘 먹는 모습이 싫어진다.
그다음은 숨소리.
사람이 숨 쉬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그런 때가 온다.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지면 헤어질 때가 된 거라고 본다.
그때 헤어지면 원망이 없고, 그때를 넘기면 부부가 되든지 원수로 살든지 그러겠지.
따지고 보면 뭐 그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평화를 위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각자 공간을 가집시다.
셰어 하우스를 꿈꾼다.
1층이나 2층에 공동 주방을 가지고,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각자 방 안에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되,
먹을 때만큼은 같이 모일 수 있게, 서로 시간은 다르더라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모여 출석 부르듯 같이 밥 먹는 거 말고,
호텔의 조식 뷔페처럼, 느릿느릿 편한 복장으로 나와서 각자 알아서 먹고 갈 수 있게,
멤버들을 위해 그런 식당을 운영하는 셰어하우스.
그러면 그냥 요양원 같은 건가.
사람들이 무척 부담스럽지만, 또 동떨어져 있고 싶지는 않은 묘한 욕심이다.
경계선에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유부단하게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로 편안함을 느낀다.
지옥의 문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
아 거 참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나갈 거면 나가쇼~ 하는 말을 듣게 된다고
그래서 천국 문 앞에서도 그 짓을 또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그런 스토리를 쓰고 있는 건지, 나 원 참.
30년 넘는 동안 꾸준하게 안부는 나누면서도, 실제로 만나는 횟수는 별로 없는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야구팬과 축구팬의 성향차이처럼, 개와 고양이의 언어 차이처럼,
뭐 하나 합을 맞춰 보기가 어려울 것 같은 후배가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한다.
늘그막에, 뭐 그리 늙은 건 아니지만, 서로 살아 있는 거 확인하면서, 아프면 챙겨주면서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거 참, 뭐, 그렇지, 나쁘지 않지, 각자 방이 있고, 공용 공간이 있고,
개인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과연... 가능할까.
최근에 옥인동, 청운동, 통인동, 서촌, 이런 동네를 보고 오더니 바람이 들었다.
뱁새 가랑이 찢어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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