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관찰
042. 모른다 본문
‘나는 잘 모르는데’라는 말이 나를 편하게 한다. 어머니가 뭘 모른다고 말하면 답답했는데, 아버지가 뭐든 모른다고 할때도 답답했었는데, 이제 나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나를 어려운 일로 부터 빠져 나올 수 있게 하고, 책임을 회피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일을 맡겨 몸이 편해지는 경험을 한다. 모른다는 말은 매직이다.
은행에 일 보러 갔다가 오픈뱅킹 앱을 깔게 되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 길 안내 하듯 천천히 차분하게 어플 사용법도 알려 준다. 네네… 친절하게 알려주니 나도 잘 듣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세상에 이런 앱을 처음 보는 것 처럼 신기해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은행을 나선다. 나도 할줄 안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컴퓨터를 고치는 일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면 내가 편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대접받는 느낌도 든다. 부장님이 컴퓨터 관련된 것에서는 자꾸 뭘 모르는 척해서 짜증 났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모른다는 말은 당장 나를 편하게 만들지만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리는, 금치산자 선언이다.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봐달라고 알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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