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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페퍼, 서울의 맛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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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페퍼, 서울의 맛

JongHoe 2021. 10. 7. 01:06

밤이 되자 슬슬 답답함이 올라온다. 밖으로 나가자고, 차에 안경을 두고 왔다고, 콜라를 마시면 시원할 거 같다고, 나갔다 오면 무기력이 사라질 거 같다고, 밖에만 나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낮에 입던 옷을 또 입을까? 아니, 그건 빨래 돌리고 있지, 잠깐 입을 옷을 꺼내 입기는 좀 아깝지 않나? 지금 집중이 되려고 하는 데 나갔다 오면 또 땀나고 씻고 그러면 흐름이 깨지지 않을까? 콜라는 몸에 안 좋을 텐데, 같은. 그냥 나가면 그만인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또 시간이 갔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나갔으면 2번은 갔다 왔을 시간이 흐르고서야 겨우 밖으로 나간다.

 

안경을 챙겨 올 것이다. 콜라든 아이스크림이든 뭔가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거리를 사 올 것이다. 땀 흘릴 정도로 걷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을 쐬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나가는 거다. 방을 환기시키듯 나를 환기시키기 위해 나가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아유 거참 움직이기 한 번 어렵네. 주차장에서 안경을 꺼낸다. 잠깐 장비 확인하러 갈 때 재킷에 넣어 두고 안 꺼낸 것이다. 돋보기라 평소에는 이동 중에 쓸 일이 없으니 안경집만 챙기고 안경은 안 챙겨 온 거다. 내일 꺼내면 되겠다 생각했지만 돋보기 없이 책 보려니 답답했다.

 

주차장에서 나와 걷는다. 땀을 흘리지 않게 천천히 느릿느릿 여유 있게. 선선한 밤바람이 기분 좋다. 낮에 지나갔던 초밥집 앞을 지나고 곱창집, 커피, 빵집, 중국집 앞을 지난다. 예전 같았으면 한창 붐빌 것 같은 시간인데 손님이 없다. 오늘 장사를 마치고 문을 닫았거나, 내일 준비를 하기 위해 주방에만 불이 켜져 있거나, 배달 음식 전용이라 손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거나 그렇다. 천천히 느릿느릿 관심 없는 무심한 눈길로 가게를 구경하고 앞으로 나간다. 바쁠 것도 없고 목적도 없고 해야 할 것도 피해야 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무념무상의 산책이다.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800미터 정도? 1km 정도는 아니겠고, 500m는 넘었을 것 같은 거리를 걸었다. 아쉽긴 하지만 코스를 좀 더 멀리 잡으면 2~3km가 넘게 되어 땀이 날 것 같고, 한 바퀴 더 도는 건 재미도 없어 산책을 마친다. 됐다, 이 정도면 바람은 쐰 거지.

  

집 앞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동고에서 아무거나 2+1인 아이스크림을 3개 골랐다. 딱히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냉동고에 넣어두고 언젠가 꺼내 먹을 때 기분 좋을 것 같아서 사고 싶었다. 딱히 뭘 먹고 싶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뭘 선택하든 상관없을 텐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한다. 아이스크림 2개와 얼음과자를 하나 골랐다. 얼음과자는 컵에 담아 반쯤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시듯 깨 먹을 것이다.

 

냉장 음료 코너에서 닥터 페퍼 2개, 웰치스 포도와 딸기 하나 씩 골랐다. 이건 별 고민할 게 없다. 있으면 먹고 없어도 아쉽지 않은 음료다. 코카콜라도 좋지만 닥터 페퍼가 좋다. 코카콜라는 늘 먹던 아는 맛이지만 이건 서울에서 처음 맛보았던 서울 음료다. 뭐 대단한 사건이라서 기억을 하겠냐마는, 정확한 기억도 아니겠지만, 닥터 페퍼는 서울에 와서 처음 먹어본 것이라 특별해 보이는 것일까? 왠지 젊고 의욕적인 맛이다.

 

평소와 다른 사람들, 내가 늘 보아왔던 동네 사람들, 사투리를 사투리라고 생각도 못할 정도로 익숙한 사람들과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다 마신 음료다. 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음악을 한다, 연주를 한다, 작곡을 한다, 출판을 한다, 영화를 찍는다, 촬영을 한다, 광고를 만든다, 연기를 한다, 세트를 만든다, 미술을 한다, 뭔가 한다 한다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런 곳에 왔구나 내가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구나 할 때, 그런 사람들과 만나서 일할 때, 일 이야기할 때, 메뉴판에 독특한 이름으로 있던 음료다.

 

굳이 생각하자면 그런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음료지만 평소에 생각이 날 정도로 애정을 가진 맛은 아니다. ‘아 이런 게 있었지’하는 정도인데, 편의점에서 뭘 마실까 하고 음료를 고르다 이 녀석을 만나면 왠지 반갑고 갑자기 마시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정도의 애착 음료, 서울의 맛 음료수다.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을 집어넣고 책상에 앉았다. 산책을 하고 바깥바람을 쐬고 리프레쉬가 되어서 그런가 무기력한 기운이 사라지고 열정 에너지가 올라왔다. 그래 오늘은 써보자 하고 타이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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