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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꿈

JongHoe 2021. 10. 30. 10:55

아침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이후에 침대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않고 밍기적거리다 꾸는 꿈, 개꿈이다. 하지만 아침 꿈은 흥미로운 면이 많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거나 평소와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보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는 똥을 싸는 꿈이었다.

 

뭐 용변을 본다거나 하는 말일 수도 있겠는데 똥이 똥이지 뭐, 다른 말 쓴다고 냄새가 안 나나. 그런데 다행히도 똥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아침 꿈이 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그게 또 영감을 준다.

 

나는 앞이 탁 트인 넓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꽤 넓은 방이었는데 강당 같은 느낌도 났다. 학교 운동장 객석 같은 높은 계단이 한쪽 벽에 있었고 나는 거기 여러 층계 중 한 곳에 있었다. 운동장을 쳐다보듯 사무실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친한 후배가 근처에 와서 “형 뭐해요?” 하고 물었다. “응 똥 싸고 있어”.

 

내 자리 좌우에는 어느새 아크릴 칸막이 같은 것이 생겨있었다. 상체 위쪽은 투명하고 아래쪽은 불투명했다. 문이 없어 앞쪽은 활짝 틔어 있다. 나는 변기에 앉아 있고 바지도 내린 상태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내 자리 주변에 많이 모였다. 옹기종기 웅성웅성 북적북적하다.

 

“무슨 일 있어?”

“몰라, 뭐 발표한다고 모이래서 온 거예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일 것이다. 나는 바지를 내린 채 앉아있고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상태에 대해 전혀 눈치채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알면서 모른 채 하고 있거나. 냄새도 안 나나? 근처에 있고 싶나?

 

“어떡하지? 나 지금 이런 상태인데?”

“아, 형님, 똥 싸고 계셨구나, 어서 닦고 나와요”

 

나가나 마나, 나가봤자 여기고 안에 있어도 여긴데, 아크릴 칸막이가 있다 뿐이지 밖이나 마찬가지다. 움직이면 노출되고 움직이지 않아도 노출되어 있는데,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움직이지 않고 싶지만 이 상황이 불안해서 도망가고 싶다.

 

“내가 일어나면서 빨리 바지를 올리고 도망갈게, 뒤를 부탁해”

“알았어요, 어서 뛰어요”

 

일어나려다 보니 닦지도 않고 바지를 입는 게 찝찝했고, 뒤처리를 하지 않고 도망 가면 그 뒤에 남아 있을 것들을 남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일단 물을 내려야지 하고 물을 내린다.

 

“쿠후우 카아하코호오옥 옥 코오콕 코코코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차, 물 내리면 소리 때문에 들키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소리는 크게 나버렸고, 사람들이 쳐다본다.

 

뛸까? 지금 뛰어야 하나? 바지를 올릴까? 닦지도 않았는데, 닦으면 닦는 과정이 다 보일 텐데 그게 더 흉하지 않나? 일단 자리를 피하고 옷 갈아입는 게 낫지, 그래도… EDM 음악이 정상 비트에서 점점 빨라지면서 정점에 다다르는 것처럼 생각이 극한으로 빨려가듯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다가 펑~

 

화면이 바뀌듯 내 모습은 액자 속에 들어갔다. TV라고 해도 되겠다. 벽에 걸린 TV처럼 나는 화면 밖에 나와있다. 똥의 전설이라도 되었나? 정신을 차린 건지 잠에서 깨어난 건지 너무 공포스러운 상황이라 기절이라도 한 건지. 일단 내가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저렇게 공개된 장소에 화장실이 있을 리 없다. 문도 없고 좌우가 투명한 벽이 있는 화장실이 있을 리 없다. 똥 싸고 있네 라고 생각한 것은 나뿐이고, 그것도 내가 말을 해야만 보였다. 똥 싸는 것을 보이는 것, 공개된 장소에서 똥 싸는 게 공개되는 것처럼, 나의 부끄러움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꿈처럼 나의 공포는 논리적이지 않고 과장되어있다.

 

나의 공포, 나의 두려움은 똥인가 똥에 이어지는 상황인가. 나는 남들의 평가와 내가 어떻게 보이는 가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그것이 이런 꿈으로 나온 것인가. 신경 쓰고 싶지 않고 무시하고 싶지만 저절로 생각하게 되는 영역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완벽하길래 실제로 그렇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하는가, 왜 나를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하는가.

 

한발 물러서 겁내고 있는 나를 본다. 쫄지 마라.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니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다. 점점 위로와 격려와 짜증의 말이 나타난다. 똥꿈 이야기는 꼭 써야지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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