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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쓰기

왜 소설인가

JongHoe 2022. 1. 4. 16:20

글은 왜 쓰고 싶어 하나? 어느 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힘들다기보다 뭐랄까, 잘 안 돼서 기분이 안 좋았달까, 뭔가 그 기분은, 힘든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고 뭔가 불편한 느낌인데 보통의 상태보다 좀 더 기분 나쁜 것에 가까운 그런 기분이 들었다. 괴롭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힘들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고, 그냥 좀 많이 불편한 기분. 몸이 불편한 건 아니니 딱히 어디가 불편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다.

 

글이 안 써진다는 글만 몇 년째 쓰고 있는 것 같다. 글이 안 써진다는 글만 쓰는 사람이다. 브런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야기로 신청하면 통과될까. 글이 안 써진다는 얘기는 많이 써놨으니 바로 신청해도 되겠다.

 

왜 글을 쓰고 싶지? 안 써진다고 하면서 왜 자꾸 쓰려고 하지? 지금까지 뭘 하다가 잘 안되면 포기도 잘했으면서 왜 글은 이렇게 붙들고 있냐고. 글이 "내가 만만하냐?"하고 물어볼 거 같다. 그러게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지?

 

평소에 글 쓸 일이 없는 직업이다. 회사에 들어와서 첫 보고서 썼다가 "너는 보고서를 안 쓰고 소설을 쓰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분은 내가 뭘 해도 좋게 말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이 소설 잘 쓴다는 칭찬이 아니란 것은 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기분이 나빴다. 지는 '~하므로', '~하여', '~하며', '~하고 또한' 같은 접속사를 남발해 여러 문장을 하나로 붙이지를 않나,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도 않으면서 지적질은. 또 문장의 끝에는 '~함' 같은 말을 넣어 술어를 명사로 끝내주는 고리타분한 말을 쓰는 주제에. '요청', '귀사', '상기 명시한'처럼 한자어 쓰기도 좋아했다. 아, 지금 그 사람 불평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지. 하여튼 쉬운 말도 어렵게, 쉬운 일도 어렵게, 간단한 것도 복잡하게 처리하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니 아 이제 내가 보고서 쓸 일은 없겠구나 하고 자연스레 글쓰기와 멀어졌다.

 

회사에선 HWP 안 쓰고 잘 지냈는데, 회사 밖에선 글 쓸 일이 많았다. 보고서는 아니지만, 설명하는 글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글쓰기를 꾸준하게 한 것 같다. 책도 쓰고 교재도 만들고 했지만 뭔가 이건 좀 아니다 싶은, 글쓰기의 만족감이 없었던 것 같다. 일기를 쓰고 블로그를 쓰고 나서 느끼는 기분과는 달랐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니야 내가 무슨, 에이 나는 그런 글쓰기를 하는 게 아니지, 소설은 무슨, 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무도 묻는 사람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대답했으므로 물리적인 손사래를 친 것은 아니지만 진짜 손사래를 친 것처럼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칼럼을 쓰면 기분이 좋았다. 하나의 완성된 글이 나오는 게 좋았고, 그걸 밖에 보이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지 나는 관종이었어. 사람들의 관심이 좋았고 또 부담스러웠다. 관종이긴 한데 주목받는 건 싫어하는 관종이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는 그런 면에서 좋았다. SNS도 내적인 관종에겐 좋은 놀이터다. SNS에서도 재미있게 열심히 하긴 했는데, 뭔가 허전한 건 여전했다. 칼럼 쓰기, 블로그 같은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수준의 뭔가가 필요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다른, 다른 클래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의 지적 허영심으로는 평범한 인정이 불만족스러웠을 거다.

 

그래 소설을 써보자. 어려운 습작 시기를 가지고 발표를 하고 합평을 하고 그런 전통적인 과정은 맘에 들지 않았다. 무슨 습작이야, 그냥 쓰면 되지. 쓰고 싶은 거 생각나는 거 쓰면 되지 않나? 뭘 연습용으로 따로 써, 쓰는 대로 발표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완성만 못한 게 아니라, 시작도 못했다. 그렇지, 뭘 하려고 마음먹으면 갑자기 어려워진다고. 안 쓸 때는 몰랐는데, 누구나 쓸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어려워지는 거, 이게 처음은 아니다. 운전도 그렇고 자격증 시험도 그렇고 뭐하나 해보자고 마음먹으면 쉽게 되는 게 없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허기짐도 있는 것 같다. 뭔지는 모른다. 창작의 욕구? 그런 건가. 소설 한 편은 아니더라도, 짧은 장면이라도 뭔가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큰 공연을 끝내고 느끼는 만족감과 비슷하다.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이런 걸 했구나 하는 그런 대견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그려낸 세계가 만족스럽고 좋았다. 그 세계는 뭔가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이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이건 아니고 아련도 아니고 아린다라는 것도 아니고 뭔가 평소와는 다른, 애틋함도 아니고, 아 뭔가 하여튼 이상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글 쓰는 동안에도 그런 기운이 유지됐고 쓰고 나서도 여운이 있었다. 나는 그 기분 상태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명하는 글이나 매뉴얼을 만들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글쓰기가 만드는 세계가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이구나 하는 것은 알겠다. 이게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게 뭔지 한 문장으로 딱 설명은 못하겠다. 내 마음을, 기분을 내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는 게 우습다.

 

쓰고 싶은데 쓸 것이 없다고 늘 시작한다. 왜 쓸 것이 없나. 안 물어봐서 그런가? 하긴, 요즘은 점점 궁금한 것이 없어지는 것 같다. 아는 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 궁금하다. 그렇겠지, 그럴만하니까 그랬겠지, 그런가 보다, 대체로 그런 기분이다. 안 물어봐도 이것저것 할 말이 많은 건 남들이 뭘 못하는 거 볼 때다. 그러니까 그건 글이 아니고 잔소리다. 그러니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잔소리 말고, 가르치는 말이 아닌 글을 쓰고 싶다. 쓰면서 내가 좋아지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고 또 내가 비겁하고 이상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느끼고,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생각했다가 나 혼자 몰랐구나 엄청 바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글쓰기. 어떤 상황에 들어가서 그 속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도 좋고, 그 세상과 살짝 동떨어진 이질감도 좋다. 소설 쓰기는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

 

오늘 글쓰기는, 궁금하지 않다는 상태를 발견하고, 뭘 물어보니 할 말이 참 많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툭 건드렸는데 이렇게 말이 많잖아. 질문을 하자. 안 궁금해도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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