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18)
생각 관찰
글은 왜 쓰고 싶어 하나? 어느 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힘들다기보다 뭐랄까, 잘 안 돼서 기분이 안 좋았달까, 뭔가 그 기분은, 힘든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고 뭔가 불편한 느낌인데 보통의 상태보다 좀 더 기분 나쁜 것에 가까운 그런 기분이 들었다. 괴롭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힘들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고, 그냥 좀 많이 불편한 기분. 몸이 불편한 건 아니니 딱히 어디가 불편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다. 글이 안 써진다는 글만 몇 년째 쓰고 있는 것 같다. 글이 안 써진다는 글만 쓰는 사람이다. 브런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야기로 신청하면 통과될까. 글이 안 써진다는 얘기는 많이 써놨으니 바로 신청해도 되겠다. 왜 글을 쓰고 싶지? 안 써진다고 하면서 왜 자꾸 쓰려고 하지? ..
새해 새로 시작하는 글쓰기 새해 글쓰기. 새해 다이어트, 운동, 금연, 금주... 뭐 그런 종류의 새로 시작하는 글쓰기. 오늘은 월요일이니 시작하기도 좋은 날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작이 어렵다. 시작 못하는 병이 어딘가 명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마감을 넘기고서야, 아 마감이 지나버렸네 하고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안 되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고약한 버릇에 관한 무슨 증후군도 명명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렇게 괴롭고 잘 낫지 않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겠지. 나만 이렇지는 않겠지.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을 거다. 마감을 넘겼다 치고, 잘 쓰는 건 어차피 안되니 일단 쓰기라도 하라고 말을 하지만 벌써 눈치챘다. 안 쓰는 쪽으로, 마감을 넘기는 쪽으로, 오늘은 망했다고, ..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J 씨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12시가 되기 전에 1000글자, 원고지 5매를 써내야 네 식구 하루치 분량의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J 씨는 편하게 글쓰기를 마친 적이 없다. 겨우겨우 원고를 채우고 하루치 분량의 식량을 배급받는다. 어떤 날은 원고를 쓰지 못해 배급을 받지 못한 날도 있다. J 씨의 집에서는 미리미리 원고를 써놓으면 안 되냐고 묻는 일이 잦았다. J 씨는 미리 쓰기 싫어서 안 쓰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 대화는 늘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 목소리가 커지고 험악한 분위기에 막둥이가 울고, 애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J 씨가 "집안 꼴 조오타" 큰소리치면서 화장지 같은 깨지지 않은 물건을 집어던진다. 요란하게 우당탕 책꽂이에 쌓아 ..
오늘 아침은 양배추 계란밥을 해 먹었다. 소화가 잘되는 재료들이라 속이 더부룩하지도 않고 만들기도 쉽다. 양배추를 씻어서 길쭉하게 채 썰고, 그릇에 담아 랩 씌워 구멍을 좀 내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쪄낸다. 아삭한 느낌이 사라질 정도, 말랑말랑해진 양배추를 꺼내 물기를 짜내고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며칠 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 밥에 양배추 찐 것을 풍성하게 올린다. 그 위에 계란을 깨서 올린다. 전자레인지에서 2분, 계란을 반숙 정도로 익힌다. 꺼내서 참기름 두르고 소금 살짝, 파슬리도 눈에 보이니 흩뿌려 넣고 슥슥 비벼 먹는다. 만들기도 먹기도 치우기도 편하다. 천천히 씹어서 여유 있게 먹자고 생각하지만 금방 다 먹는다. 회사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구했다. 여기선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
아침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이후에 침대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않고 밍기적거리다 꾸는 꿈, 개꿈이다. 하지만 아침 꿈은 흥미로운 면이 많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거나 평소와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보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는 똥을 싸는 꿈이었다. 뭐 용변을 본다거나 하는 말일 수도 있겠는데 똥이 똥이지 뭐, 다른 말 쓴다고 냄새가 안 나나. 그런데 다행히도 똥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아침 꿈이 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그게 또 영감을 준다. 나는 앞이 탁 트인 넓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꽤 넓은 방이었는데 강당 같은 느낌도 났다. 학교 운동장 객석 같은 높은 계단이 한쪽 벽에 있었고 나는 거기 여러 층계 중 한 곳에 있었다. 운동..
만년필로 글씨를 쓴다. 한동안 노트에 쓴 손글씨가 답답해 쓰지 않았는데 최근에 한 유투버가 자기만의 글씨를 쓴다, 자신만의 개성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만년필을 써 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만년필이 있었지 하고 다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고. :: 이연 / 느낌이 있는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 만년필을 쓰세요 https://youtu.be/dylQETTXV1w 모처럼 초등학교 강당에 공연 나갔다. 무용단 사물 단원들의 타악기 연주와 판소리, 농악, 사자춤이 있는 찾아가는 공연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공연을 보았다. 집중하는 아이, 산만한 아이, 관심 없는 아이, 다양하다. 한 반 학생 수가 무척 적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공연 하루 전..
밤이 되자 슬슬 답답함이 올라온다. 밖으로 나가자고, 차에 안경을 두고 왔다고, 콜라를 마시면 시원할 거 같다고, 나갔다 오면 무기력이 사라질 거 같다고, 밖에만 나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낮에 입던 옷을 또 입을까? 아니, 그건 빨래 돌리고 있지, 잠깐 입을 옷을 꺼내 입기는 좀 아깝지 않나? 지금 집중이 되려고 하는 데 나갔다 오면 또 땀나고 씻고 그러면 흐름이 깨지지 않을까? 콜라는 몸에 안 좋을 텐데, 같은. 그냥 나가면 그만인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또 시간이 갔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나갔으면 2번은 갔다 왔을 시간이 흐르고서야 겨우 밖으로 나간다. 안경을 챙겨 올 것이다. 콜라든 아이..
동해 바닷가의 작은 낚시점 '동해 낚시 슈퍼' 박사장은 창 밖을 내다보며 의자 깊숙이 몸을 뉘었다. 오늘도 공치는 날인가 한숨을 내쉬며 담배 생각을 했다. 하긴 일요일 오후에는 손님이 없지.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일어나기도 귀찮았다. 넓은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넓게 퍼졌다. 비가 올 구름은 아니고 희고 밝은 구름이 뭉게뭉게 넓게 퍼져있다. 낚시하기 좋은 날씬데, 저런 구름이면 햇살이 따갑지도 않지. 방파제에 오래 서 있어도 덥지 않을 터였다. 선풍기는 천천히 회전하며 느릿느릿 가게 안 여기저기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일까 말까 하는 중에 가게 앞에 흰색 지프차가 섰다. 요란한 장식은 없었지만 커다란 타이어와 높은 차체 그 자체가 나 놀러 왔소 하는 느낌을 주는 차..
한 시간 좀 넘게 걷고 왔다. 밤이 되자 드디어 내 시간이다 하는 시간이 왔고, 이때는 뭐든 하고 싶어 진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깝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또 멍한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나갔다. 걷는 시간은 좋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도 같은데, 대체로 별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어디로 갈까?' 같은 생각을 하거나, 사람을 구경하는데 여유 있게 보는 것은 아니다. 눈이라도 마주쳐 문제가 생길까 봐 안보는 척 대충 보다 말다 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제대로 보는 것도 아니다. 무슨 생각을 계속하면서 걷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공원 산책은 풍경이 좋긴 한데 너무 쳇바퀴 도는 느낌이라 불편하고, 거리는 뭔가 바쁘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 느낌이라 별로다. 일하러 나온 게 아니니..
나는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글 쓰는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글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글 쓰는 시간의 글쓰기가 손가락과 손목의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계속 쓰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 쓰는 시간답게 글을 쓰는 시간이 좀 더 많기를 바란다. 생각을 글로 쓰고 속에 있는 말을 꺼내는 글쓰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작가가 서재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만년필로 손글씨를 쓰는 모습도 좋겠고 노트북에 타이핑하는 모습이어도 좋다. 조금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잠깐 멈칫거리긴 하지만 계속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서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상상이지만 지켜보는 것도 방해가 되는 것..
글쓰기가 안될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글쓰기 시간에 방황하는 것은 ‘딱히 쓰고 싶은 건 없는데 쓰고 싶기는 한’ 마음 상태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이 숨어 있기는 할 텐데 그런 말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가끔 어떤 말들이 언뜻 생각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꼭 말로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아직 어떤 쪽으로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쓰면서 생각해도 될 텐데 섣불리 꺼내고 싶지 않은 기분인걸까, 에이~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신중했다고. 그러다가 다음 단계까지 망설이고 있으면 이걸 지금 할 필요가 있나? 너무 긴 이야기 아닌가, 너무 짜증 나는 이야기라 기분 나빠지는 거 아닌가, 이야기의 배경 설명하다가 시간 보내고 힘 빼는 거 아닌가, 짜증은 짜증대로 나서 할..
어제는 우울감이 컸다. 퇴근도 싫었고 집에 가기도 싫었다. 답답했다. 아무 말 없이 누워있고 싶었다. 무릎을 베고 좀 누워 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쉬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 쉬고 싶었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냥 누워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면 좋겠고 예쁜 여자면 좋겠다 생각했다. 눈 감고 있으니 예쁘나 안 예쁘나 상관도 없을 텐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담쓰담 토닥토닥 누워있는 동안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 오는데 쉴 곳을 찾지 못한 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나기 처럼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고, 사막처럼 비를 피할 곳이 없는 곳에서 너무 지쳐 잠깐 내려앉은 새를 떠올렸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
오늘도 깜빡이는 커서를 쳐다본다. 길게 보지는 못하고 또 딴짓을 한다. 딴짓은 늘 있다. 언제나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이 있고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오늘은 꼭 글쓰기를 하자고 마음 먹는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언제까지 내 글의 주제로 유지될 것인지,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왜 글을 쓸까.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재된 수다 본능일까, 대나무 숲에서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익명은 싫은가? 내가 했다는 명성이 필요한가? 아아 그것도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본다. 내 생각을 지켜보기가 힘들다. 생각을 하면 몸이 지친다. 안 좋은 것만 보여서 그런가. 오늘은 “다정함은 근력에서 나온다”라는 재영님..
이상한 일이지, 매일 글쓰기로 마음먹고 첫 글을 쓴 다음부터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이 시대의 젊은이가 바로 나라는 것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여튼 그랬다. 첫 월요일을 맞이하고, 미루고 또 미루던 책 쓰기를 시작했다. 강의했던 내용이고 기술적인 내용이라 불편하거나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쉽게 집중에 빠졌지만, 집중이 어색했는지 자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창가로 갔다. 생각은 빠르고 손은 느렸다. 워드에 쳐 넣는 글자보다 쓰고 싶은 말은 한참 앞서 갔다. 이미지는 나중에 넣어야지 하면서 그림 편집을 미루면 건너뛴 부분에서 자꾸 생각이 멈췄다. 마련하지 못한 그림을 지금 그려야 하나? 그림은 나중에, 일단 내용부터 쓰자, 아니지 그러다 깜빡하면 어떻게 해? 생각날 거야,..
그날의 기억은 내가 막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곳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좁은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복도라기보다는 베란다 혹은 난간이라고 해야 하나? 건물의 안쪽도 아니고 바깥쪽도 아닌 길쭉한 길이다. 건물 외벽에 가벽으로 만든 창고 같은 길, 복도. 내 앞에 누군가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추격자처럼 내가 잡으러 가는 인상은 아니었고, 나도 저 사람처럼 빨리 여기를 지나가야 한다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도망을 치고 있었던 걸까? 그 집의 전체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낡고 또 허름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도시의 변두리, 산동네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지고 노인네 피부처럼 태양에 오래 노출되어 갈라..
새해 연휴를 보내다 하루는 밖으로 나가야겠다 싶어 뒷산에 올랐다. 이사 온 집에서 첫 동네 산책이다. 누나에게 듣기로는, 뒷산을 넘어가면 율동 공원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기 위해 빌라 단지를 지나게 되어 있어서 빌라 주민들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가보려고 하지 않았던 길인데, 가끔 등산복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아서 길이 있기는 있나 보다 했다. 오늘 그 길을 산책 갔던 것이다. 이곳은 빌라 단지가 우후죽순으로 마구 지어져 길이 구불구불하고 좁다. 길인지 마당인지 어중간한 경계도 있고 도로 가운데 전봇대가 서 있기도 한다. 주차장과 도로의 경계가 불분명해 가끔 도로를 점거한 것처럼 보이도록 주차된 차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인듯 대체로 ..
올해 마지막 아침 글쓰기를 하게 돼서 다행이다. 잠에서 깨어날 때는 귀찮은 일거리 하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놓쳐버린 약속이 되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시작하는 편이 좋다.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약속이 불편했다. 그냥 취소되면 좋겠다, 미뤄지면 좋겠다, 언젠가 다음으로, 그런 생각. 누군가를 만나기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냥 외출이 귀찮아서다. 외출 때문에 일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뭔가를 한다는 자체가 귀찮다. 요즘은 귀찮지 않은 것이 없다. 다 귀찮다. 망가지기 전에는 모른다. 눈치를 채지만 게으른 정신이 판단을 방해한다. 지금 뭔가 움직여야 된다는 결정을 하면 진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안 움직이는 방향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
일찍 잠에서 깼다. 밤에 만든 반죽을 살펴보았다. 처음 시도하는 자연발효 반죽인데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가. 오늘 아침에 오븐에 넣지는 못하겠다. 물을 끓이고 유자차를 만들어 책상에 앉았다. 자기 전에 읽던 책이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문단 정도를 읽고 나서 아 그렇지 이런 이야기였지 하고 계속 읽는다. 아침에는 시간이 잘 간다. 다래끼 난 눈의 붓기가 좀 가라앉았다. 안약을 넣으면 시원하고 또 시큼하다. 시큼하다기보다, 뭔가 레몬 같은 신맛의 기분이 느껴진다. 시원한 것과도 다른 느낌.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인지 한쪽 눈을 가리고서야 안다. 아침이면 특히 침침한 눈에 돋보기안경을 쓰고 나면 선명해 보인다. 당연한 것들이 점점 당연하지 ..
아침 글쓰기 방에 시작을 써놓고 30분을 더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30분이 훌쩍 지났다. 눈 깜빡이는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30분이 지났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 5분만 더 있다 가야지 생각하다 잤으니 못 일어난 게 아니라 안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낸 30분, 하루, 시작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아.. 아니다. 하루의 시작을 또 나를 혼내는 생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또 오늘도 그랬구나. 최근에 ‘1호가 되긴 싫어’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보았다. 개그맨 부부가 모처럼 데이트를 하러 외출했는데 맛집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결국 다른 데로 간다는 부분이었는데 앞뒤 상황은 못 보고 5분~10분 정도 분량을 보게 됐다. 다른 집으로 옮겨 가서도 남자는 계..
날이 많이 춥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눈이 내려서 그런지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그때 생각이 난다.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에선 눈 내리는 것이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겨울의 상징적인 풍경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본 사람은 거의 없는 어떤 상상의 동물 같은 느낌.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어린이 잡지 만화에서 눈 내리는 풍경과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지 실제로 눈 쌓인 풍경을 본 적은 많지 않다. 서울의 눈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첫 겨울 한 계절을 다 보내고 나서야 눈 내리는 풍경이 일상적인 겨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해 겨울에 목도리도 처음 해보았다. 부산에선 목도리도 필요하지 않았는데, 서울은 공기 자체가 차가웠다. 부산은 바람이 춥고 서울은 차가운 공기가 도시 전..